상담실에서 만난 많은 직장인들이 ‘분명 월급도 오르고 승진도 했는데 왜 이렇게 허무하죠’라고 묻는다. 미국 심리학자 에이브러햄 매슬로우가 1943년 학술지 《Psychological Review》에 발표한 논문 ‘A Theory of Human Motivation’에서 제시한 욕구 5단계설로 보면 이 허무함의 정체가 보인다.
메인 사이트 바로가기생리적 욕구, 안전 욕구, 소속과 애정 욕구, 존중 욕구, 그리고 마지막으로 자아실현 욕구가 순서대로 올라온다는 것이 원래 논문의 핵심 주장이다. 흥미로운 점은, 우리에게 익숙한 피라미드 그림은 매슬로우 본인이 그린 것이 아니라 1960년대 이후 경영학자들이 이론을 정리하며 덧붙인 이미지라는 사실이다. 급여와 고용 안정이라는 하위 욕구만 채워진 채 소속감이나 인정, 자아실현이 비어 있으면 아무리 조건이 좋아져도 공허함은 사라지지 않는다.
매슬로우가 원래 강조한 것은 하위 단계가 ‘충분히’ 채워져야 다음 단계로 넘어간다는 엄격한 순서였고, 이후 저서 《Motivation and Personality》(1954)에서 이론을 더 정교하게 다듬었다. 이 이론을 실무에 적용할 때 중요한 것은, 지금 나 또는 팀원이 어느 단계에서 결핍을 느끼는지 정확히 짚어내는 일이다. 안전 욕구가 불안한 사람에게 자아실현을 이야기해봐야 와닿지 않고, 반대로 이미 안정된 사람에게 계속 안전만 강조하면 성장이 멈춘다.
예를 들어 이직 직후 고용 안정성에 대한 불안이 큰 직원에게 ‘비전을 크게 그려보라’고 독려하는 것은 순서가 어긋난 조언이다. 먼저 안전 욕구가 실제로 채워졌다는 신호(수습 기간 종료, 명확한 역할 정의)를 줘야 그다음 단계의 동기부여가 의미를 갖는다. 반대로 이미 안전과 소속 욕구가 안정적으로 채워진 팀원에게 계속 처우나 복지 이야기만 반복하는 관리자도 있다. 이런 경우엔 존중과 자아실현 욕구, 즉 도전적인 과제나 의사결결정 참여 기회를 주는 것이 훨씬 효과적인 동기부여가 된다.
다만 이 이론은 실증 연구에서 완벽히 검증되지는 못했다. 실제로는 사람들이 하위 욕구가 완전히 채워지지 않은 상태에서도 자아실현적 활동(창작, 봉사 등)에 몰두하는 사례가 많이 보고되면서, ‘반드시 순서대로’라는 엄격한 위계에 대한 반박도 꾸준히 제기돼왔다. 매슬로우는 말년에 자아실현을 넘어서는 여섯 번째 단계로 ‘자기초월(self-transcendence)’, 즉 자신을 넘어 타인이나 대의에 기여하려는 욕구를 추가로 제안하기도 했는데, 이는 원래의 5단계 모델보다 덜 알려져 있지만 조직의 사회적 가치와 미션을 강조하는 최근 흐름과 맞닿아 있다.
실무 팀에서 이 이론을 오남용하는 흔한 방식은, 팀 전체에 똑같은 복지 프로그램 하나를 도입해놓고 ‘동기부여를 다 했다’고 여기는 것이다. 정작 각 팀원이 지금 결핍을 느끼는 단계는 제각각이라는 사실을 놓치면, 좋은 의도의 프로그램도 체감 효과가 크게 갈린다. 매슬로우의 이론이 처음 발표된 1940년대는 대공황과 2차 세계대전 직후로, 생존과 안전에 대한 사회적 불안이 매우 컸던 시기였다. 이런 시대적 배경이 하위 욕구를 강조하는 이론의 틀에 영향을 줬다는 해석도 있다.
오늘날 조직에서는 이 이론을 온보딩 설계에 응용하기도 한다. 신규 입사자에게 처음부터 도전적인 자아실현형 과제를 주기보다, 먼저 소속감과 안전감을 확실히 느끼게 한 뒤 단계적으로 성장 기회를 넓혀가는 방식이 정착 실패율을 낮춘다는 사례가 보고된다. 결국 이 이론이 40년 넘게 회자되는 이유는, 복잡한 인간의 동기를 다섯 단계라는 단순한 틀로 정리해 누구나 자신의 상태를 돌아볼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정답이라기보다 자기 성찰의 출발점으로 삼는 것이 가장 건강한 활용법이다.
다음에 스스로 이유 없는 무기력함을 느낀다면, 지금 어느 욕구가 결핍돼 있는지 다섯 단계를 하나씩 짚어보는 것부터 시작해볼 만하다. 결국 매슬로우의 통찰은 ‘사람마다 동기부여 방법이 다르다’는 뻔한 말이 아니라, 그 사람이 지금 어느 결핍 단계에 있는지를 먼저 진단하라는 실천적 지침이다. 이 진단 없이 일률적인 동기부여 전략을 쓰는 조직일수록 이직률과 몰입도 저하 문제를 반복해서 겪는다.